국제아이스하키연맹

고양에서 다시 한번 돌풍을 노리는 불사조들

고양에서 다시 한번 돌풍을 노리는 불사조들

대명 상무 돌풍의 주역들, 2014 고양 DIA 출격

발행 04.04.2014 22:45 GMT+9 | 집필자 김정민
고양에서 다시 한번 돌풍을 노리는 불사조들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서 괴력을 발휘한 대명 상무 주축들이 2014 고양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 대회에서 다시 한번 파란에 도전한다.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 팀 대명 상무는 2013~14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4강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일본제지 크레인스에 3연패,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지만 17명에 불과한 미니 로스터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명 상무의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출전이 발표됐을 때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골리 2명과 수비수 5명, 공격수 10명으로 구성된 상무는 아시아리그의 다른 팀들에 비해 선수 숫자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게다가 군 팀이라는 특성 탓에 3명의 외국인 선수를 기용할 수 없었고 부상 선수가 발생해도 대체 인력 선발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무는 2명의 부상 선수가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다. 2013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에 출전했던 김기성이 어깨 수술을 받았고 힘 좋은 공격수 서신일은 연습 경기 중 무릎 인대를 다쳤다.

13명의 스케이터 밖에 가동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선 개막전에서 상무는 안양 한라에 1-6으로 대패했다. 수적 열세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더욱 무게를 싣는 결과였다. 첫 승을 올리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상무는 다음날 열린 경기에서 안양 한라에 5-4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했고 이어진 첫 일본 원정에서 닛코 아이스벅스를 상대로 2승 1패, 도호쿠 프리블레이즈를 상대로 1승 1패를 거두며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확인시켰다.

상무는 정규리그에서 오지 이글스를 상대로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뿐, 나머지 6개 팀을 상대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보이며 꾸준한 성적을 이어갔다. 가장 놀라운 결과는 지난해 10월 26일, 27일, 29일 일본 구시로에서 열린 일본제지 크레인스와의 원정 경기 3연전을 싹쓸이한 것이다. 2003년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출범 이후, 한국 팀으로서 크레인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3연승을 거둔 팀은 상무가 처음이다. 2월 2일 도쿄에서 열린 도호쿠 프리블레이즈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12명의 스케이터가 출전한 가운데 5-0의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를 지켜본 일본 아이스하키 관계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2월 31일 하이원전(4-0)을 시작으로 1월 26일 하이원전(4-3)까지 8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가뜩이나 선수 부족에 시달린 상무가 올 시즌 부상 선수가 끊이지 않으며 단 한 번도 17명의 엔트리 전원으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크레인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무는 12명의 스케이터 밖에 기용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이유원이 무릎을 다쳐 시즌을 조기 마감했고 정규리그 최다 포인트를 기록한 박우상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훈련 도중 퍽을 맞아 턱과 뺨이 골절되는 중상을 당했다. 신상우는 하이원과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이탈했다. 김원중은 무릎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경기 출전을 강행했고 홍현목도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케이트를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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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 상무가 정규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기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모자라지 않는다.

상무가 인원 부족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올 시즌 상무가 치른 정규리그42경기와 플레이오프 3경기에 모두 출전하고, 경기당 30분 이상의 아이스 타임을 기록한 수비수 이돈구는 “상무 선수들은 대부분 국가대표로 오랫동안 활약하는 등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경기를 많이 치르다 보니 수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경기를 풀어내야 하는지를 터득했다”고 베테랑으로 구성된 팀의 높은 적응력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는 견해를 밝혔다.

군인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도 상무 돌풍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군인 신분으로서 외부와 통제된 상황에서 규칙적인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상무 선수들은 훈련과 휴식의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했고, 지구력과 회복력이 단기간에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돈구는 “정상적인 인원으로 짜인 팀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의 폭발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인원이 부족한 상무에서는 빙판에 나서면 장시간 버텨야 하기 때문에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위해 체중도 많이 줄였다. 경기가 시작되면 집중하느라 힘든 줄 모르지만 경기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 짧은 시간 내에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점차 적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아리그는 팀 당 3명의 외국인 선수(비아시아)를 기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상무는 대한민국 육군에 소속된 팀이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핸디캡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외국인 선수 없이 한 시즌을 치른 결과 오히려 선수들의 결속력과 전술 수행능력, 자신감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이돈구는 “ 기존의 팀들은 파워 플레이나 페널티 킬링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상무에서는 한국 선수들끼리 해나가다 보니 경험이 쌓여가며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를 알게 됐다. 감독님도 파워 플레이 찬스에서 득점에 실패하더라도 조급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문하셨다”고 말하며 “외국인 선수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 같은 경험은 국제 대회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양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의 객관적인 전력은 참가 6개국 가운데 가장 처질지 모른다. 한국은 어떤 팀도 꺾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팀을 상대로도 쉽게 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4월 고양 세계선수권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 팀은 지난 2012년 7월,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겨냥한 동계 종목 육성책의 일환으로 창단됐다. 한국 아이스키의 발전을 위한 결정적인 장애물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상무 아이스하키팀의 창단은 대표 선수들의 수명 연장을 의미했다. 종전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2년간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0대 후반이면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 복무를 하며 2년간 빙판에 나서지 못한 선수들은 대부분 재기하지 못했다. 선수로서 절정의 경기력을 보일 20대 후반의 나이에 조기 은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한국 아이스하키에는 크나큰 장애물이었다.

상무가 창단된 2012년 12월 10명의 선수들이 입대했고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2013년 1월, 상무 아이스하키 팀의 첫 훈련이 실시됐다. 상무 창단이 한국 아이스하키에 미치는 효과는 2013년 4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3 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 대회에서 확인됐다.

2012년 12월 상무에 입대한 10명 가운데 이용준, 박우상, 김기성, 김원중, 김윤환, 박성제가 출전했고 이들은 한국이 2승 4패로 5위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김기성은 4골 2어시스트로 한국 대표팀 최다 골과 최다 포인트를 기록했고 골리 박성제는 헝가리전에서 기적 같은 5-4 승부치기 승을 지켜냈다.

상무는 2013년 6월 7명의 선수가 추가 입대하며 현재의 진용을 갖추게 됐다. 헝가리 세계선수권 멤버 가운데 조민호와 신상우, 이돈구, 오현호가 새롭게 상무 유니폼을 입으며 전력이 한층 강화됐다.

상무의 돌풍은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열린 전국종합선수권에서 하이원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고 지난 2월 열린 동계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상무의 돌풍의 주역들은 4월 고양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한국 대표팀 엔트리의 절반은 상무 선수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아시아를 놀라게 했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각오다.

상무의 캐치프레이즈는 ‘수사불퇴(雖死不退)’. 죽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국군의 의지가 담겨져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목표인 2018년 평창 올림픽 출전까지는 험난한 길이 남아 있다.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물러서거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상무 투혼’을 앞세운 한국 아이스하키가 고양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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